피렌체의 사랑 이야기 1 (Ginevra degli Almieri)
실화인지 허구인지는 아직도 의견이 분분하지만, 이 사랑 이야기는 책이나 연극에서 계속 회자 되었고 1936에는 'Ginevra deli Almieri'라는 제목으로 영화화되었던 꽤 유명한 전설이다.
때는 1396년, 한 참 인문주의가 동트던 피렌체에 아름다운 Ginevra degli Almieri ( Almieri 가문의 지네브라) 가 살고 있었다.
피렌체 두오모 근처에 살던 그녀는 아리따운 외모에 고운 마음씨, 명석한 두뇌, 고귀한 품위까지 고루 갖춰 피렌체 시민의 사랑을 한몸에 받던 한마디로 고전적 여주인공의 전형이었다.
한창때인 열여덟의 Ginevra는 많은 청년의 청혼을 받고 있지만 우리의 절개 있는 주인공의 심장은 한 남자만을 위해 뛰었으니 그의 이름은 Antonio Rondinelli (Rondinelli 가문의 안토니오)였다.
그들의 사랑은 Ginevra의 아버지 Bernardo(베르나르도)가 그녀를 Agolanti(아고란티)가문의 아들인
나이 많은 Francesco(프란체스코)와 혼인을 성사시키기 전까지 계속되었다.
딸의 마음보단 가문의 사업과 돈이 더 중요했던 베르나르 도는 피렌체에서 오래되고 유력한 가문 중에 하나이고 그가 하는 사업에 중요한 영향력을 미치는 Agolanti 가문에 Ginevra를 시집 보낸다.
이때 두 가문의 수장이 만나서 결혼 계약을 한 곳이 Loggia deli Agolanti 이다.
후에 Canto degli Agolanti 라는 대리석 현판이 생긴 곳으로 오랫동안 피렌체인들의 결혼에 대한 조건들을 조정하고 의논할 때 모이던 곳이되었다.
(<—현재 세례당이 있는 세례자 성 요한 광장( Piazza San Giovanni)에서 오래된 다리( Ponte Vecchio)로 가는 로마 길(Via Roma)과 첫번째 블록에 있는 토싱기 길 (Via Tosinghi) 모퉁이에서 있다.)
그 시대 가문의 여자들이 그러했듯이 Ginevra도 자신의 사랑을 가슴에 묻고 아버지의 뜻을 따라 Francesco와 결혼을 했지만, Antonio를 향한 사랑과 그리움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커져만 갔다.
잃어버린 사랑의 아픔으로 Ginevra는 슬픔과 고뇌 속에서 지냈다. 결혼 후 몇 주가 지나자 곡기마저 끊어버린 Ginevra는 이전의 아름다움과 생기는 도저히 찾아볼 수 없는 흡사 깊은 병을 앓고 있는 병자의 모습으로 변해갔다. 한편 남편인 Francesco는 자신의 사업에만 관심이 있는 일 중독이었다. 이렇게 남편의 관심에서도 멀어진 Ginevra는 친척들의 관심과 의사의 처방에도 시름시름 앓다가 급기야 당시 1400년대에 유행하던 전염병인 흑사병으로 의심받고 고립되어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었다.
어느 날 아침, 자신의 침대에서 곧은 자세로 누운 Ginevra는 반쯤 감긴 눈으로 숨이 거의 끊긴 상태로 발견되었다. 모두는 큰 슬픔에 빠졌고 사랑하는 연인을 잃은 Antonio는 깊은 절망에 잠겼다.
하얀 신부복의 옷을 입은 그녀의 시신은 당시의 관습대로 화려한 꽃으로 치장한 나무 판에 올려져 남편의 집에서 나와 피렌체의 두오모 (Santa Maria del Fiore)로 향했다.
장례식이 끝난 후 성당에서 Giotto의 종탑 바로 옆에 있던 Agolanti 가문의 묘지로 이동되어 해골들이 즐비한 무덤 안에 시신을 올려놓고 무덤을 덮었다. ( 당시 흑사병 때문인 잦은 죽음으로 따로 무덤을 만들지 않은 듯하다.)
그날은 칠흑 같은 어둠이 드리운 그달의 첫 번째 화요일이었다.
해골들이 사이에서 Ginevra가 갑자기 눈을 떴다.
살아있던 그녀를 죽었다고 오인하고 생매장을 했던 것이다.
그녀가 눈을 뜨자마자 느꼈을 공포는……. 굳이 설명을 안 해도….
공포에 파랗게 질린 Ginevra는 온 힘을 다해 자신을 덮고 있던 돌과 흙을 걷어내고 무덤 밖으로 기어나온다.
딱 봐도 귀신 복장의 하얀 옷을 입은 Ginevra는 두오모와 종탑의 오른쪽 광장에서 이어진 (오늘날 Via Campanile) 긴 길목을 지나 오케 길로( Via delle Oche) 접어들어 남편의 집이 있는 Via Toshinghi로 향했다. 힘겹게 문을 두드린 Ginevra는 위층 창문에서 내려다보고 있는 남편을 보았다.
죽은 부인의 귀신이라 생각하고 매우 놀란 남편은 가슴에 십자가를 그리고 창문을 닫으며 하인들에게 소리쳤다. 절대 문을 열지 말라고…….
크게 실망한 그녀는 전혀 기력이 남아있지 않은 몸뚱이를 끌다시피 하여 그녀가 태어나고 자란 부모님 집으로 향했다. 옛 시장 광장 (현재 공화국 광장 Piazza Della Repubblica )쪽으로 창문이 나 있던 그녀의 집은 한 블록거리의 가까운 곳이었지만 무덤 속에서 깨어난 그녀에겐 꽤 먼 거리였다.
힘겹게 집에 도착한 그녀가 가족의 품을 그리며 문을 두드린다. 그녀의 어머니가 문을 열었다. 하지만 그녀의 어머니는 창백한 얼굴과 흙투성이의 딸을 알아보지 못하고 귀신의 장난이라고 생각하여 서둘러 문을 잠가 버린다. 자신의 어머니에게서도 외면당하고 절망에 빠진 Ginevra는 더는 그 어떤 힘도 남아있지 않아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얼마가 지났을까? Ginevra는 마지막으로 그녀의 연인 Antonio를 보고 싶었다. 이럴 때를 위해 항상 남아있는 '젖 먹던 힘'을 짜내 Rondinelli가로 향한다.
한밤에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깨어 문을 연 Antonio는 자신의 눈앞에 있는 광경을 보고 너무 놀라 정신이 없었다. 하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고 눈앞의 귀신 행색의 여인이 자신의 Ginevra라는 것을 알아채고 바로 집안에 들인다. Ginevra는 안도감을 느끼면서 Antonio의 품에서 쓰러진다.
쓰러진 Ginevra는 그로부터 나흘 동안 진짜 생사를 건 싸움을 시작했다. 죽음과 삶의 경계를 오가는 그녀 옆엔 Antonio가 있었다. 결국, 죽었다고 오해받을 만큼 조금의 기력도 남아있지 않던 그녀는 나흘 만에 깨어나 Antonio와 그의 가족의 지극한 정성과 치료로 점점 회복되어 갔다.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Ginevra와 Antonio, 두 사랑하는 연인은 같이 있게 되었다.
자신의 아내가 살아있다는 소식을 들은 Francesco는 Ginevra를 다시 집으로 데려오려 하지만 Antonio의 반대와 자신에게 무관심했고 자기 죽음보단 자신의 돈을 더 소중히 하는 남편에게 분노하는 아내 때문에 결국 Francesco는 그 둘을 종교 재판에 부친다.
결국, 부 대주교인 Vicario del Vescovo 앞에 불러 세워진 우리들의 세 주인공은 이런 재판 결과를 듣는다. "... che per essere stato disciolto lo primo matrimonio dalla morte, poteva la donna legittimamente passare ad altro matrimonio!". “죽음인해 첫번째 결혼에서 해방된 여인은 합법적으로 다른 사람과 혼인 할 수 있다.”
그래서 이 재판의 결과로 Ginevra와 Antonio는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았다.고….
역시 르네상스를 시작한 도시의 성직자는 뭐가 달라도 달랐다. 정말 극적인 이야기에 맞는 매우 인간적인 끝이다. 결국, 결혼은 죽음 때문에 끝나지만, 영원한 사랑은 죽음도 갈라놓은 수 없다는 필자가 좋아하는 참 로맨틱한 이야기였다.
그런데! 왜! 전설은 여기서 끝나지 않고 그 뒤에 피렌체 사람들이 매월 첫 번째 화요일마다 하얀 옷을 입고 두오모 근처 전 남편과 자신의 집을 헤매는 Ginevra 귀신의 모습을 목격했다고 할까?
아마도 원한이 남았거나 아니면 Ginevra가 뒤끝이 있거나?....